해남 땅끝마을

뜨거웠던 여름이 막 지난 2006년 9월,

광주에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질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남 땅끝마을. 두번째 방문.

그 첫번째는 2002년,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실험실 생활 속에서 교수님이 마지막 남은 나의 자존심을 빡빡 긁으시는 바람에 참아왔던 나의 분노가 극에 달해 바로 짐싸들고 나와서, 잠수를 탄다고 향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실험실에는 씩씩거리면서 나 잠수 탄다고 찾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전화기 꺼놓고 무작정 잠수.

눈치빠른 후배는 어디가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그냥 머리좀 식히고 오겠다고 바로 뒤돌아서서 뛰어 나왔었다.

처음에는 친구 만나서 술먹으며 풀까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기엔 스스로가 너무 짜증나서,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무작정 버스 터미널로 가서는 광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광주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졌고, 근처 모텔에 방을 잡고서는 편의점에가서 먹을거랑 술을 몇병 사들고 들어왔다.

미칠것 같았던 감정이 슬슬 가라앉으니 갑자기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해서, 부랴부랴 집에는 실험 때문에 몇일 못들어 갈것이라고 연락을 넣었다.

집에 건 전화를 끊는 순간에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갑자기 짜증이 다시 몰려와서 밧데리를 빼버렸다.

일단 광주를 오기는 왔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곳이 바로 해남 땅끝마을 이었다.

처음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휑하구나, 촌동네구나, 뭐 이런.. 그때만해도 거기엔 모텔이 하나밖에 없었고, 주변에 공사를 막 하고 있었던 것으로 얼핏 기억된다.

거기서 정말 잉여로운 시간을 이틀인가 보냈을 때, 실험실에서는 난리가 났었던가 보다.

음성으로 남겨진 수껀의 메세지속에는 여자 후배가 울면서 어디냐고 일단 연락좀 꼭 달라면서 그랬다.

집에다가도 연락을 했는지, 어머니가 음성을 남기셔서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어본다.

이러다가 실종신고 낼거 같아서 일단 집에는 잠시 나와있다고 전화를 해 놓구선 후배한테는 살아 있으니 걱정 말라고 메세지를 남겼다.

솔직히 나는 지금이 너무 좋은데, 주변에서 너무 그러니깐, 왠지 내가 못할짓 하는것 같아서 일단 하루정도 더 있다가 가겠다고 연락을 넣었다. (거기선 너무 할 것도 없고 심심하기도 했음)

아쉽게도 그렇게 일주일도 못넘긴 채 나의 일탈은 끝이났다.

2006년도에 해남을 방문했을 때, 예전의 모습과는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른 유명 관광지처럼 모텔, 민박도 많아졌고, 음식점도 많아졌다.

유명한 해남 땅끝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빛내림..

셀카를 찍고 바로나서 화장실에 갔다왔는데, 지갑을 모르고 놓아두고 나왔었다. 화장실 나와서 일분도 안되서 다시 들어가서 찾아봤는데 없.어.졌.다.

혹시나해서 거기 안내소에서 방송도 때렸다. 지갑을 분실했으니 습득하신 분은 좀 갖다 달라고.

그런데 안왔다. ㅜㅜ 무려 한시간을 기다렸다.

마침 집에 돌아갈거라고, 현금을 평소보다는 좀 많이 찾아놨었는데, 그리고 버스표도 끊기 전이었는데.. 완전히 알거지가 되어버렸다.

막차가 십분후면 출발하는데, 안왔다. 정말 혼자갔으면 집에 오지도 못할뻔 했다.

사진 십분 후의 내 표정은 아마도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을 것이다.

아, 해남에서의 슬픈기억이란… 지금도 씁쓸하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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